2017. 4. 12.
아빠등에 말타기를 참 좋아했지요.

97년 5월,
병원에서 콕 찝어준 예정일에
아침부터 살짝살짝 신호를 보내더니
저녁부터 짧은 간격으로 진통이 왔다.
몇가지 검사를 한 의사선생님이 
수술을 권했지만
자연분만 해보겠다고 밤새 버텼다.
몇분마다 격렬한 진통이 찾아드는 와중에
잠이 얼마나 쏟아지던지.....
어른들 말씀이 진통 중에 잠이 오면 
오래 걸린다더니 아침까지 자궁이 열리지 않았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결국 수술실로 들어갔고
회복도 많이 더디고 힘들었다.
뱃속에서 많이 커서 나온 아들은
머리숱도 많고 짙었으며
금새 눈을 뜨고 말똥말똥 눈을 맞추었다.
다음 해 바로 둘째를 낳아
돌 조금 지나 오빠가 된 아이.
겨우 첫돌이 지난 두살박이 아들은
같이 기저귀 차고 같이 젖병 빨면서도
오빠라서 혼나고 오빠라서 양보해야했다.
순하고 무던해서 이때껏 속썩인 적 한번 없던,
학원 학습지 한번도 안 하고,
알아서 국립대 골라서 들어가고,
엄마가 사주는 촌스런 옷도
군소리 없이 내내 입던,
뭐 하나 사달라고 조른 적도 없던 아이.
밭에서 늦게 들어가면 쌓인 설거지도
척척 해놓았던 착한 아들.

일곱살쯤 되었던가

그 녀석이 훈련소에 입소했네요.
벚꽃이 활짝 피고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 개나리가
꽃대궐은 차린 날에


머리 짧게 깎고
우는 엄마 꼭 안아주고
덤덤히 걸어서 들어갔습니다.

예쁜 여자친구도 있어요.

멀리 전라도 광주 충장신병교육대에
아들을 두고 집에 오니
평소에 늘 펼쳐져있던 이불이
반듯하게 접혀진 아들 방 들여다보고
눈물이 왈칵.
평소에도 쓰고나서 뒷정리를 안한다고
궁시렁거렸던 쉐이빙젤이 여전히
입에 거품물고 뚜껑열린 채로 있어
또 눈물이 왈칵.
전날 머리깎는다고 외출했던
바지와 양말과 속옷 세탁기에 넣다가 울컥,
무심코 새어나오는 한숨에
남편이 "또 아들 생각하나?"
내 마음 읽어주는 한마디에
또 왈칵.

느리고 둔하고 눈치도 없어
많이 혼날까 걱정이 되지만
착하고 속깊은 아들이니
어디서나 제몫은 하겠지요.
다만 엄마 마음이 짠하고 안스러울뿐.
퇴소일 기다리며
바쁜 농사철 후다닥 거리다보면
시간은 잘 가겠지요.

다음 대통령 부디 잘 뽑아서
아들 군에 보내도 걱정없는 나라 되기를,
청춘들이 희망을 품는 나라가 되기를,
이쁜 내 아들 건강하게 잘 있기를,
간절한 바람을 포기마다 심는 봄입니다.

하필 바로 앞에 키큰 녀석이 서서‥ㅠ